여의도를 지나가던 어느 날, 아이가 국회의사당 돔을 가리키며 왜 저런 형태인지 묻더군요. 제 눈엔 익숙해서 몰랐는데, 아이의 눈엔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언젠가 보았던 재밌는 이야기를 떠올려 알려줬습니다. 

“응, 우리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 둥그런 지붕이 반으로 열리고, 태권브이라는 로봇이 출동해서 지켜줄거야.” 

“진짜!” 

아이의 반응은 의문문이 아니라 감탄문이었어요. 믿을 줄 몰랐는데… 어떻게 보면 맞네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법안을 만드는 곳이니까요.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건물이 청와대인 것처럼, 국회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건물은 국회의사당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사당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일하는 중요한 상징적 건축물이지요.


여의도의 명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국회의사당 전경




1973년 시작된 숙원사업


지금의 국회의사당은 1975년 세워졌습니다. 오랜 숙원사업이었지요. 1948년 5월 31일 국회가 처음 열리고 1975년 여의도에 국회의사당이 건설되기 전까지 국회는 임시거처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처음 국회가 열린 장소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이었습니다. 그리고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국회는 대전 충남도청, 대구 문화극장, 부산 문화극장 등 여러 장소를 전전해야 했지요. 국회의사당 건설은 1959년이 되어서야 추진됩니다. 남산공원을 터로 하여 국제현상설계공모가 진행되었지요. 하지만 1961년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며 무산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 건설은 여의도 개발과 함께 다시 추진됩니다. 당시 개발되고 있던 여의도 면적의 8분의 1에 달하는 10만 평 부지, 2만 4,636평의 건물면적, 7년의 공사 기간, 총 135억원의 공사비 등 최대 규모의 국책 사업이었지요. 1966년에는 국회의사당 건설을 이끌 국회의사당 건립위원회가 발족하였습니다. 건립위원회가 작성한 마스터플랜에는 장래를 대비한 융통성과 신축성, 간단명료한 공간구성, 고귀한 표현, 현대 재료와 공법 사용, 한국문화의 전통과 특수성을 반영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은 1975년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완공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의 외관 특징은 6층 높이의 거대한 24개 기둥과 푸른 돔입니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24개의 기둥은 경회루의 석주를 본뜬 것이며 24절기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라는 의미도 지니지요. 중앙의 돔은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모아 반영하는 의회 기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3백석과 1백석 규모의 회의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원형의 회의장은 국회의원의 정원이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이동식 의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본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민의원 회의장은 최대 400석까지 확장 가능하지요. 회의장 외에도 의사당에는 260여 개의 실 등 의원 활동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돔 아래의 의사당 내부에는 로비인 중앙홀(로텐더 홀)이 있습니다. 중앙홀의 대리석 바닥과 발코니의 난간에는 신라시대 기와 문양, 석굴암 천장 무늬, 경복궁 근정전 창호의 꽃살 무늬 등이 현대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본회의장(왼쪽)과 중앙홀 돔 천장, 로텐더홀




70년대 뜨거운 감자, 논란이 된 설계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첫인상은 거대한 기둥과 돔(Dome)에서 시작됩니다. 기둥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 돔은 국민의 의견 수렴이라는 의미가 있지요. 하지만 돔이 결정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민이 아닌, 국회의원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건립위원회는 설계를 위해 당시 유명한 건축가 6인을 지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일반인 대상으로 설계를 다시 공모하며 이슈가 됩니다. 일반 공모의 응모기간이 60일이었고, 우수작의 설계비가 70만 원에 불과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당시 책정된 공사비 70억 원과 비교해 설계비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요. 전문가들은 최소 6개월 이상의 설계 기간과 1천만 원 이상의 설계비가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건립위원회는 우수작을 뽑되 당선작은 뽑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설계지침입니다. 설계의 저작권과 본 설계 실시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저작권을 불인한 것은 여러 작품의 장점을 취합해 더 좋은 의사당을 건립하기 위함이고, 이중 모집을 한 것은 중지를 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설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국회사무처의 설명에 건축계의 불만은 이어졌지요. 건축가협회 회원 90여 명은 의사당 설계에 응모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지명 작가 6인 중 김수근 등 3명은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국회의사당의 설계는 여러 건축가의 설계안을 종합하여 공동안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곧 일반공모 우수작 건축가인 안영배와 지명 위촉된 김중업, 김정수, 이광노가 참여하는 설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건축가가 공동으로 설계안을 제시한 이후에도 국회의사당의 설계는 계속 변경되었습니다.

안영배 건축가가 선보인 국회의사당 1차 기본 설계안





건축가들은 원치 않았던 돔


여러 건축가가 공동으로 작성한 기본설계에는 돔이 없었습니다. 돔 대신 한옥 처마 모양의 중층 캐노피가 있었습니다. 당시 설계에서 국회의사당은 지금보다 낮고 널찍한 비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계안은 당시 국회의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국회의원들은 미국 국회의사당의 돔, 유럽 건축물과 같은 돔을 넣어달라고 요구합니다. 반면 건축가들은 국가 상징이 될 건축물을 옛 서양 건물을 모방한 듯한 모습으로 짓고 싶지 않다고 하였지요.

이 때의 상황은 설계에 참여했던 일반 공모 당선자 안영배 건축가의 구술집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계속 높은 돔을 요구하자 한번은 건축가들이 일부러 보기 싫게 돔을 크게 넣어 투시도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보기 싫게 큰 돔을 넣은 설계를 국회의원들이 무척 좋아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건축가들은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돔을 그대로 옮겨 놓으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설계를 그만두고 물러설 각오까지 했다고 하지요.

결국 국회의사당 건립위원회는 권위와 위엄을 부여하기 위해 돔을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건립위원회는 설계가 권위가 없다는 여론이 있어 국회 총무단과 관계 장관 회의를 거치고, 국회의장단, 건축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심의를 거쳤다고 발표했지요. 하지만 정작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돔을 올리자는 의견에 찬성한 이가 없었습니다. 

1969년 5월 28일자 경향신문에는 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실립니다. “식민지 정책의 상징, 2세기 전의 낡은 양식, 문화의식 모르는” 등이 언급됐지요. 건축가협회는 ‘외국에 가보니 돔이 있는 건물이 좋아 보이더라’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얕은 취향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대표적인 돔 건축물이 조선총독부의 중앙청임에도 돔을 고집한 것에 대한 지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국회의사당은 저층부가 복잡한 설계안들을 제외하고, 저층부를 단순하게 처리했던 김정수의 안에 나지막한 돔을 씌우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돔이 결정된 이후에도 한 차례의 난관이 남아있었습니다. 청와대 보고 후 설계안이 다시 변경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선총독부 건물보다 한 층 더 높일 것을 요구했지요. 예산증액은 없이 말이지요. 예산증액이 없었기에 의사당은 높아지는 대신 바닥면적이 줄었습니다. 낮고 널찍한 느낌을 주던 의사당의 정면 비율이 깨졌지요. 의사당이 높아지자 나지막한 돔은 아래에서 잘 안 보이게 되었습니다. 다시 아래에서도 돔이 보이도록 두 배가량 돔의 크기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1973년 5월 15일 여의도에 신축중인 국회의사당 본관 메인홀에서 3부요인, 역대 정부 의장등 4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량식을 하였다(왼쪽). 

공사중인 국회의사당 외관(가운데)과 국립 공보관의 모습(오른쪽).


국회의사당의 열주. 건물 하중을 받는 듯해 보이는 이 기둥은 사실상 장식에 해당한다.


여러 건축가가 노력을 다한 국회의사당 설계안은 당시 권력자들의 이러저러한 요구에 따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앞서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24개의 기둥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돔은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모아 반영하는 의회 기능을 상징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건축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회의원들이 요구에 따라 추가된 돔이 국민의 의견 수렴을 상징한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국민의 의견을 상징한다는 24개의 기둥이 구조적으로는 아무 하중도 받지 않는 장식용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국회의사당 건설은 당대 최대의 이슈와 투자를 이끌었던 국가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당 설계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은 자신의 작품집에서 국회의사당을 빼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어느덧 국회의사당이 완공된지 45여 년이 지났네요. 리노베이션이 논의되고 있지요. 그동안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어진 만큼, 새로워질 국회의사당은 국민의 대표들이 일하는 곳이라는 본래 가치가 더 잘 표현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국회의사당 전경


자료 및 이미지 출처 : 국회의사당 자료실, 서울사진아카이브, 안영배 건축가

원문 : 한국건설기술인협회지 ‘건설기술인’, 2017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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