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19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싱가포르가 미국(2위)과 홍콩(3위)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10월초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은 국가 순위에서도 싱가포르는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현재의 싱가포르 위상은 과거를 떠올려볼 때 매우 극적입니다. 50여년 전 싱가포르는 무역항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빼고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도시였습니다. 자원도, 땅도, 물도 부족했습니다. 나라를 지킬 군대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강제 독립되었습니다. 싱가포르는 독립을 원치 않았습니다. 독립을 막고자 했던 리콴유는 독립 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지요. 


독립 당시 싱가포르는 서울시(605㎢)보다 작은 580㎢ 면적의 도시였습니다. 무역항으로 성장했지만 제조업 기반은 취약했지요. 협소한 국토와 부족한 천연자원, 그리고 다민족 국가가 가지는 인종 문제 등 싱가포르는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세기 만에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변모합니다. 컨벤션 도시, 국제회의 도시라는 명성도 가지고 있지요. 2018년 6월에 있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기의 만남도 싱가포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싱가포르는 각종 도시 순위에서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2019년 국제협회연합(UIA)이 발표한 국제회의가 가장 많이 열리는 도시이자, 세계은행이 선정한 기업하기 좋은 곳 2위 도시입니다. 살인적인 물가로도 유명합니다. 영국 EIU(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경제분석기관)의 세계 생활비 보고서에서는 6년째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 1위를 차지하고 있지요.


싱가포르는 경제성장과 함께 도시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에도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 다국적 기업과 해외 자본의 투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비즈니스 환경이 매력적이어야 하고, 여기에는 도시 환경도 포함되지요. 싱가포르의 도시 정책은 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이라는 측면과 산업경쟁력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자마자 싱가포르는 도시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슬럼화된 도심의 활성화와 부족한 토지 확보, 교통체계에 대해 장기비전이 1971년 마련되었지요. 이를 컨셉플랜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싱가포르의 신도시, 공항, 고속도로, 지하철, 유명 랜드마크들은 모두 컨셉플랜을 근간으로 만들어졌지요. 싱가포르 도시경쟁력의 핵심 요인을 찾는다면, 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장기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철저한 계획, 그리고 계획을 실행하는 강력한 정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마리나베이 주변 모습 (출처 : businessinsider)


현재 싱가포르의 대표 관광지인 마리나베이는 1970년대 시작된 간척사업의 결과입니다. 매립지였던 마리나베이는 싱가포르의 가장 상징적인 지역이 되었습니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부터 시작하여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가든스바이더베이, 헬릭스 브릿지, 에스플러네이드 등 유명 명소가 모여있지요.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은 머라이언 상과 함께 싱가포르의 관광상품마다 그려져있는 랜드마크입니다. 경사가 최고 52도에 이르는 기울어진 건물이지요. 건축가는 까다로운 설계로 유명한 모세 샤프디가 맡았습니다. 이 호텔은 현대판 피사의 사탑으로도 불렸는데요. 5.5도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보다 10배가량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영국계 구조설계사인 Arup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짓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언급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호텔은 우리나라의 쌍용건설이 시공했습니다. 공사금액 9,000억 원으로 당시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진출 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건축사업이었습니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과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앞에 들어선 연꽃 모양의 건물은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입니다. 10개의 꽃잎 모양 건물입니다. 손을 닮았다고 하여 싱가포르의 손으로도 불립니다. 이 역시 모세 샤프디가 설계했습니다. 


헬릭스 브릿지


헬릭스 브릿지는 마리나베이와 싱가포르 도심을 연결하는 보행자 다리입니다. 헬릭스 브릿지의 복잡한 형태는 DNA 구조를 본땄지요. 호주 건축가 필립 콕스가 설계했습니다. 조명이 더해진 헬릭스 브릿지는 싱가포르의 야경 명소입니다.

 

에스플러네이드


마리나베이샌즈의 건너편에는 공연장 에스플러네이드가 있습니다. 에스플러네이드는 두리안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합니다. 두 개의 돔은 유리 지붕에 7,000개 이상의 삼각 알루미늄 햇빛 가리개를 덧씌운 구조입니다. 뾰족한 장식을 덧댄 돔은 열대 과일 두리안을 닮았습니다. 1,600석 규모의 콘서트홀과 2,000석 규모의 극장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가든스바이더베이 전경과 슈퍼트리 (출처 : gardensbythebay)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의 옆에는 야외 정원인 가든스바이더베이가 있습니다. 슈퍼트리로 불리는 최대 16층 높이의 인공나무로 유명하지요. 콘크리트 기둥과 철골 가지로 만들어진 슈퍼트리에는 200여 종의 식물이 자랍니다. 낮에는 나무 윗부분에 설치된 태양전지가 싱가포르의 뜨거운 햇빛으로 전력을 만들고 이는 온실과 밤의 조명에 사용됩니다. 슈퍼트리 사이에는 22m 높이의 공중보행로가 있습니다. 나무 사이의 공중보행로를 건너며, 혹은 슈퍼트리의 야경을 바라보며 많은 방문객이 영화 아바타 속의 행성을 떠올리지요.

 

주얼창이공항의 인공폭포 레인보텍스 (출처 : safdiearchitects)


최근 가든스바이더베이 만큼이나 동화 같은 자연을 담아놓은 명소가 생겼습니다. 싱가포르의 관문 창이공항에 생긴 환승센터이자 복합쇼핑몰인 주얼(Jewel)입니다. 도넛 모양의 유리 돔으로 만들어진 이 터미널은 40m의 인공폭포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앞서도 등장했던 모세 샤프디가 설계했지요. 싱가포르는 일찍이 정원도시(Garden City)라는 비전을 세웠었습니다. 1970년대의 나무 심기는 이후 공원과 녹지조성 사업으로 이어졌지요. 현재는 나아가 일상생활에까지 스며든 정원 속의 도시(City in a Garden)를 만들고자 합니다. 모세 샤프디는 주얼창이공항이 정원 속의 도시라는 싱가포르의 명성을 드높일 것이라고 밝힙니다.  


주얼창이공항의 평면 및 단면 (출처 : safdiearchitects)


이러한 명소들이 바로 싱가포르의 경쟁력입니다. 싱가포르가 가지고 있는 컨벤션 도시로서의 명성은 문화예술과 관광에 대한 국가의 지속적인 투자로 이뤄진 것입니다. 또 그만큼 강력한 국가의 개입도 있었지요. 싱가포르의 가장 부족한 자원을 꼽으라면 첫째가 토지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토지 관리를 위한 싱가포르만의 남다른 제도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국가가 토지의 90%를 소유합니다. 어느 나라보다도 국토의 관리가 중요했기 때문이겠지요. 싱가포르에서 토지는 공공의 것이라는 개념 아래에 장기임대제도로 관리합니다. 개인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100년씩 대여하는데, 도시계획에 필요하다면 개인의 토지를 언제든지 국가가 취득할 수 있는 법안도 있습니다. 국가가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체계적인 도시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민간사업자가 토지를 대여하고 건축할 때는 토지 대여 비용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디자인도 정부의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도시 청결에 대한 싱가포르의 정책은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껌의 수입과 판매, 길에서 껌을 뱉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으며, 공공화장실에서 사용 후 변기의 물을 안 내리는 행동에도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구밀도가 높기에 자동차 수를 통제하는 제도도 만들어졌습니다. 정부가 정한 자동차 보유율과 등록 취소된 자동차 수에 따라 매년 등록할 수 있는 자동차 수가 정해집니다.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열한 경쟁입찰을 거쳐 자동차 소유권을 취득해야 하지요. 2018년 2월에는 연간자동차 증가율을 기존 0.23%에서 0%로 낮추는 법안이 발효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대중교통시설은 계속 확충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좁은 국토를 확장하기 위해 바다를 메우고, 고층건물을 짓고, 지하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수행된 도전적인 건설 프로젝트에서 우리 건설사들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좁은 국토는 꾸준히 개간하여 현재 720㎢로 증가했습니다. 서울보다 커졌지요. 싱가포르의 국토는 반세기 동안 무려 24%가 증가했습니다. 개간 비율로는 세계 최고입니다. 한때 토지 개간에 필요한 모래를 수집하며 세계 최대의 모래 수입국이기도 했습니다. 싱가포르의 토지매립 사업에 오래전부터 참여해온 현대건설은 싱가포르 국토의 7%를 현대건설이 매립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입니다. 지금도 싱가포르 서쪽의 투아스 신규 매립지 조성 사업을 일본의 펜타오션, 네덜란드의 보스칼리스와 함께 수행하고 있지요. 


구코타워 (출처 : SOM)


싱가포르에는 고층건물이 많습니다. 좁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현재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2016년 완공된 64층, 290m 높이의 구코타워(Guoco Tower)입니다. 싱가포르에는 건축물의 최고 높이가 280m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16년이 되어서야 280m를 넘는 건축물이 들어섰지요. SOM이 설계하고, Arup이 구조설계한 구코타워의 시공은 삼성물산이 맡았습니다. 대만의 타이페이 101,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까지 전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초고층 건물을 건설해왔지요. 싱가포르는 차량기지조차도 빌딩형으로 짓습니다. GS건설은 축구 경기장 120개 넓이의 부지에 지하 1층∼지상 2층의 지하철 차량기지와 4층 규모의 버스 차량기지를 짓고 있습니다. 창이공항 인근의 이 차량기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싱가포르는 지하 공간을 통한 국토의 확장을 꾀합니다. 지하공간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도 활발하지요. 현대건설은 세계 3대 오일허브로 손꼽히는 주롱섬 석유화학단지의 석유비축기지를 해저에 건설했습니다. 10층 아파트 높이에 각 저장고는 올림픽 경기용 수영장 64개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석유비축기지라고 합니다. 또, 삼성물산은 현재 싱가포르 최초의 복층형 지하도로 공사를 맡고 있습니다. 8차선의 기존 도로 아래에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고난도 프로젝트이지요.


싱가포르에는 여전히 건설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세계적인 설계사와 건설사들의 각축장이지요. 얼마 전부터 싱가포르의 발주자들은 중국의 건설사들을 참여시켜 가격경쟁을 끌어낸다고 하네요. 하지만 매립지의 무른 땅에 고층건물을 세우고 지하 공간을 개발하는 첨단 프로젝트에서 대한민국의 건설사들은 여전히 활약하고 있습니다. 혹시 싱가포르를 여행하신다면 건설 현장의 모습을 살펴보세요. 익숙한 건설 기업의 로고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싱가포르는 체계적인 계획과 관리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도시에 대한 싱가포르의 관심은 여전히 절대적이지요. 미래를 한발 앞서 준비하는 정책과 실행력을 볼 때, 앞으로도 싱가포르의 변화는 계속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원문 : 한국건설기술인협회지 ‘건설기술인’,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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