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삼성물산 황선업 선임입니다. 시티팝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도 들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이런 고민이 무의미할 정도로 이미 시티팝은 서브컬처를 넘어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하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지금의 음악에서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감성과 정서에 매료되어 예전 작품들을 디깅하는 형국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시티팝을 적극 활용하는 아티스트 또한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도 하죠. 흔히 말하는 뉴트로 현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티팝의 정의

 


사실 시티팝은 정확히 말해 일본에서 시작된 용어입니다. 사실 ‘장르’로 구분하기엔 모호한 면이 있기도 하죠. 1970년대 일본은 이미 영미권의 음악이 즉각 영향을 미치던 상태였고, 이를 기반으로 여러 뮤지션들이 ‘일본음악의 스탠다드’의 정립에 골몰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퓨전재즈나 펑크, 디스코 등을 주축으로 한 음악 스타일과, 고도 성장하여 화려해 보이지만 정서적으로는 공허함을 안고 사는 도시인들의 애수가 겹쳐지며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죠. 물론 이 성립 과정에는 버블경제로 대표되는 초호황기가 필연적으로 개입됩니다. 1970년대부터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첨단장비 및 노하우를 갖춘 스탭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자본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음악이었거든요. 



시티팝의 선구주자

 


뉴욕과 LA에서 녹음을 진행한 야마시타 타츠로의 < Circus Town >(1976). 생 초짜를 미국으로 보내 작업을 시킬 만큼 배짱도 돈도 있던 당시 일본음악시장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음악적으로는 AOR(Adult Oriented Rock)과의 연결고리도 확인할 수 있고요.


당시만 해도 음악적인 특성보다는 그 정서가 더 중요한 정서이기도 했습니다. 사노 모토하루의 섬데이는 당시에는 대표적인 시티팝으로 거론된 곡이나, 지금의 시티팝 세대가 듣는다면 이게 무슨 시티팝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Ride on time’이나 그의 아내인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와 같은 곡들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죠. 이와 함께 국내 퓨전재즈나 펑크(Funk) 뮤지션들이 시티팝이라는 용어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아래 소개하는 예전 뮤지션들이 당시 ‘시티팝’이라는 용어로 소개된 적은 없습니다. 뉴트로 열풍을 타고 갑작스레 ‘시티팝 뮤지션’이라는 명찰이 달리고 있을 뿐이죠. 오늘 자리에서는 우리나라의 시티팝 클래식과 최근 주목 받는 신예 뮤지션들의 시티팝 곡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함께 즐겨주시고, 아직 생소하신 분들은 아래 곡들을 감상하시며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한번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야마시타 타츠로를 좋아하신다면 그가 솔로로 데뷔하기 전 몸담았던 슈가 베이브의 < Songs > 앨범을 반드시 챙기시기 바랍니다. 



여름을 달래주는 시티팝 명곡 리스트!

 


윤수일밴드 – 아름다워(1984)


한국의 시티팝 연표에서 가장 꼭대기를 이야기할 떄 종종 언급되는 곡인데요. 2015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의 라이브. 30년전 노래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펑크와 디스코를 기반으로 한 리듬감 있는 사운드에 비치 보이스 류의 서프 록까지 끌어안으며 본인의 음악적 역량을 맘껏 펼쳐 보이고 있는데요. ‘아파트’나 ‘황홀한 고백’, 더 나아가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의 골든 넘버들과는 작풍의 차이가 꽤 있어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본인은 신중현 사단의 밴드 골든 그레이프스(Golden Grapes)에서 활동했을 만큼 정통 록 지향의 아티스트였으나,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록 뮤지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박히며 부득이하게 트로트 지향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할 수 밖에 없었죠. 스텔라장의 리메이크 버전 신스라인을 보다 강조한 느낌입니다.


이후 ‘윤수일밴드’를 결성하며 자기 음악에 대한 갈증을 본격적으로 해갈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 정점에 있는 이 곡은 세대를 뛰어넘어 요즘 힙스터들에게 회자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까마득한 후배가수인 스텔라장의 커버 버전도 함께 들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김현철 – 오랜만에 (1989)


사실 이 곡이 실린 그의 데뷔앨범 < 김현철 Vol.1 >은 어느 한 곡을 꼽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명반입니다. 한국의 100대 명반을 뽑으면 적어도 20위권 안에 반드시 들어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지금이야 < 복면가왕 >의 패널자리에 앉아 놀라는 리액션에 특화된 아저씨 정도로 비춰지겠지만, 이 노래를 듣고 또 이 작품을 듣고 당시 김현철의 나이를 확인해본다면 당시 천재로 불렸던 상황이 이해가 가실 겁니다. 김현식과 들국화, 신촌블루스, 시인과 촌장 등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오던 동아기획이 자신감 있게 내놓은 신성은 이처럼 한국 대중음악사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단순한 악기구성으로 구현하는 깊은 사운드, 서정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가사와 그에서 비롯되는 감수성. 클래식을 대중음악으로 끌어온 것이 유재하와 이영훈이었다면, 퓨전재즈를 대중음악에 완전히 정착시킨 것은 바로 김현철이었죠. 이 앨범의 대표곡은 ‘춘천가는 기차’지만, 시티팝에 걸맞는 쓸쓸함과 애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트랙은 바로 이 곡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도시에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 / 나를 비웃는 가로등의 고독한 미소”라는 가사가 개인적으로는 참 좋더라고요. 요즘 10~20대들에게 저런 가사를 읊어주면 오글거린다고 욕 먹으려나요.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감수성을 표출을 제한하는 요즘의 세태가 조금은 아쉬워지기도 합니다. 이 또한 리메이크 버전 있죠.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정말 김현철의 음색과 닮았습니다.




장필순 – 어느 새 (1989)


당시 동아기획의 히로인이었던 그의 데뷔작에 실려 있는 인상적인 시티팝 넘버입니다. 당시 음색이 김완선과 굉장히 닮아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퍼커션과 기타연주 등에서 라틴 음악이나 보사노바의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 앞에 소개한 넘버들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매력을 선사하는데요. 여기에 선율 자체는 지극히 가요스러운지라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정석적인 느낌을 원하신다면 관악 세션을 중심으로 구성된 ‘점점 더’에도 한번 귀를 기울여보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더불어 지금과는 좀 다른, 장필순의 풋풋한 음색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감상포인트! 요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보컬리스트 중 하나인 백예린. 보다 도회적인 느낌이 물씬 납니다.


정원영 – 다시 시작해 (1995)


특유의 서정성 강조를 위해 활용된 코러스의 풍성함이 핵심인 트랙인데요. 후렴의 애잔함이 몇 울릴 기세입니다. 전반적으로 리버브를 강하게 부여해 공간감을 강조했고, 여기에 신시사이저의 음색과 적당히 흩뜨려 놓은 듯한 코러스 믹싱이 이를 뒷받쳐주고 있죠. 편곡에 있어 당시 미국 팝의 전형적 트렌드가 연주나 편곡에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며, 멜로디 또한 대중적인 선율이 후렴을 통해 반복되고 있어 굳이 장르적인 매력을 언급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의 매력이 충분한 곡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시티 팝 계열의 곡을 찾고자 하신다면, 이처럼 김현철, 정원영과 더불어 이들과 연관되어 있던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등과 같은 뮤지션을 검색하는 것이 좀 더 빠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종신 – Summer man (2018)


그러면 요즘 유행하는 시티팝 리바이벌 명곡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첫 번째 타자는 윤종신인데요. “시티팝은 제 학창시절 음악을 좀 듣는다는 친구들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선망하고 동경했던 음악이었어요.” 그가 했던 말처럼, 시티팝은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뮤지션들이 동경하는 카테고리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시티팝은 ‘공허함’이나 ‘애수’ 보다는 ‘낭만’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죠. 이 곡 역시 드라이브 뮤직으로 적합한 경쾌함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가사 역시 여유를 놓지 않으며 ‘Carpe diem’의 기조를 적극 실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시대를 겪은 뮤지션이라 그런지 장르의 핵심과 분위기를 원류와 가장 가깝게 구현하고 있어 시티팝 전도사라는 타이틀 또한 아깝지 않네요. 제목처럼 여름과 딱 어울리는 곡이니 휴가기간의 BGM으로 적극 활용해 보시는 건 어떠실지요. 



아도이 – Wonder (2018)


최근 밴드신에서 인기나 관객 동원 측면에서 단연 두각을 보이고 있는 아도이. 신스팝 기반의 팀인만큼 시티 팝 또한 자신들의 독특한 색깔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음악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윤종신의 시티 팝이 휴양지 선베드에서 마주하는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속 태양이라면, 이들의 시티팝은 고된 하루 업무를 끝내고 귀가하는 택시 창 너머로 보이는 가로등이랄까요.


센치함과 공허함을 축으로 잡고, 규칙적인 드러밍 위로 스산히 깔리는 펑키 리프와 키보드의 적막한 정서가, 무던하게 내뱉는 노랫소리와 맞물리며 삐걱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돌아가는 여느 현대인의 하루를 엿보게 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 이들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밴드의 시티팝. 같은 재료로 유니크 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그 음악적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트랙입니다. 또한 최근 관객동원 측면으로만 보면 새소년과 함께 투 탑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교동의 밤 – City girl city boy



가볍게 풀어내는, 선선한 초여름 밤 같은 분위기가 좋아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초이스입니다. 작곡 크루인 서교동의 밤이 활동 초기부터 함께 해왔던 객원보컬 다원과 함께 한 곡으로, 클럽에 어울리는 시티 팝의 무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용된 음색들 자체가 보다 화려하고 아기자기하며, 선율이나 코러스에서 대중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 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덕분에 일반적인 팝을 듣듯이 접할 수 있어 해당 장르를 잘 모르거나 흥미를 갖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직 시티팝에 대한 매력을 느끼시지 못했다면, 마치 가이드 북과 같은 이 노래로 시작해 보심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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