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도래한 원더키디의 시대라곤 하지만 2020년이 이토록 미래적일 줄이야. 코로나19로 인해 지금 세상은 모두 랜선으로 통한다. 미술계도 그렇다. 온라인 전시가 뜨거운 미술계, 명화 속 건축 산책으로 대리만족을 누리자.
인상주의 예술사조의 창시자로 불리는 클로드 모네. 1872년 선보인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으로 ‘인상파(Impressionist)’를 태동시켰다. 여기서 인상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 즉 빛의 변화에 따른 시시각각의 사물 변화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모네는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건축물의 모습을 연작 형태로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이 <루앙 대성당>이다. 빛의 채도, 농도, 각도에 따른 변화에 집중했다. 마찬가지로 모네는 지베르니에 있는 자택 정원도 무수히 많이 그림으로 남겼다. 수련 연작이 바로 그것. 특히 <수련 연못> 작품에는 당시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다른 예술가들처럼 모네 역시 물 건너온 일본풍에 매료되었는데, 그림 속 그의 집 정원 다리는 일본 정원의 다리 건축을 따라한 것이다. 모네의 작품을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요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상주의 작품이 집결된 오르세미술관은 기차 폐역을 재건축한 곳으로 도시 재생 공간을 대표한다. 현재 휴관 중이지만 비교적 다른 미술관들에 비해 홈페이지에 전시관 내부와 소장 작품들을 잘 소개해 두었다.
모네와 같이 인상주의 화가지만 빛보다는 원근법, 파리 철근 구조물에 집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비 오는 파리 거리>, <미호메닐 가의 집에 있는 화가의 젊은 동생 르네>(1875), <발코니>(1880) 등이 있는데, 이런 그의 작품에선 인물보다 주변 배경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여기엔 당대 19세기 나폴레옹3세의 파리 도시 정비 사업으로 변모한 파리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미굴 같은 원시적 골목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한 쭉 뻗은 일자선 대로변 모습들이 그것.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세련된 도시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발코니’ 건축법이다. 서민들은 값비싼 철제로 설계한 발코니를 쉽게 들일 수 없었고, 이는 곧 부르주아의 상징이 됐다. 건물 상층에 사는 것, 발코니를 둔다는 것은 높은 계급을 의미한다. 카유보트의 작품에 발코니가 종종 등장하는 것은 그의 위치와도 상응하는데, 일찌감치 유산을 상속받은 금수저였던 그에겐 평소 흔히 보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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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들에서 건물의 외관을 주로 살펴봤다면 고흐의 작품은 내부에 집중해보자. 따뜻한 햇볕을 찾아 아를의 노란 집에 새로운 삶을 꾸린 고흐는 이곳에서 희대의 작품들을 많이 탄생시켰다. 고흐는 아를의 카페나 자신이 머물던 집, 정원 등을 그려내곤 했는데, 말년에 그린 <아를의 반 고흐의 방>은 화가 개인의 내밀한 공간을 보여준 흔치 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세 개의 버전으로 제작됐다. 각각 색깔을 조금씩 달리한 작품은 작가 개인의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고 미술평론가들은 말한다. 정갈하고 소박한 인테리어는 고흐 특유의 붓 터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우키요에와 연결된다. 다다미와 삼나무를 활용하는 일본 건축물에서 볼 법한 단정한 모습이기 때문. 세 작품은 인테리어와 구도는 같아도 디테일은 조금씩 다른데, 첫 번째 그림은 방 안 액자 속 인물을 친구 외젠 보슈와 군인 폴외젠 미예의 초상화로, 두 번째 그림은 바닥 색상만 조금 다르게, 세 번째 그림은 액자 속 인물을 어머니와 여동생으로 바꾸었다. 방은 개인의 가장 은밀한 공간이다. 이 작품에서 말년 고흐의 상태가 고스란히 엿보이는 이유다.
이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를 꼽는다면 단연 데이비드 호크니다. 현재 노르망디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는 거장,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그는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을 선보이며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의 에너지를 전한다. 호크니의 전성기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지만 성정체성을 깨닫고 반항심에 영국을 떠나 정착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남긴 그림들이 대표적이다. 야자수와 수영장, 반듯한 미국식 건축물이 어우러진 풍경과 쨍한 색감, 직선들로 구축된 그의 작품은 어떤 회화들보다 건축적이다. 원근법을 살리지 않은 호크니의 작품은 얼핏 설계도면을 연상시키며 인물들마저 정적으로 보인다. 정지된 피사체를 담은 사진과 같은 화풍을 발전시켜 그는 1970년대에 건물 속 인테리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71), <나의 부모님>(1977) 등의 작품은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 화보와 다름없다. 요즘의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레트로 인테리어 열풍과 맞물려 집마다 호크니의 작품 포스터가 걸려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집 인테리어를 고민 중이라면 호크니의 작품들을 참고하길 권한다.
명화 속 현실의 건물과 인테리어를 둘러봤다면 이제 완전히 미지의 세계로 떠나보자. 초현실주의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이다. 그는 상반된 이미지, 비현실적 이미지로 숱한 영감을 후대 예술가들에게 뿌렸다. 그 결과 마그리트의 작품은 종종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오마주되곤 하는데, <골콩드>(1953)는 <매트릭스>(1999)의 스미스 요원들을 만들어 냈고, <피레네의 성>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1994)을 탄생시켰다. <더 리스닝 룸>(1952)처럼 공간 속에 사과 하나가 꽉 차 있거나 <빛의 제국>(1954)처럼 낮과 밤이 상반된 집의 풍경이거나, 마그리트는 종종 공간감을 작품으로 데려왔다. 그에게 공간은 상식에 맞서는 투명한 캔버스였다. <피레네의 성>을 그릴 무렵 그는 공중에 떠 있는 사물을 주로 포착했는데, 이는 당대 아인슈타인이 촉발시킨 상대성 이론의 시각에서 시공간을 이미지화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창문부터 바위 위의 성까지, 다양한 건축적 형태를 만날 수 있는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국내에서도 직접 느낄 기회가 생겼다. 무려 국내 첫 르네 마그리트 단독 특별전이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4월 29일부터 9월 13일까지 열리는 것이다. 랜선으로는 결코 체감할 수 없는 아우라,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당장 가봐야 할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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