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는 전시된 작품을 보러 갑니다. 그래서 대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미술관의 유명세가 되지요. 그런데 소장품보다 미술관 자체가 더 유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 같습니다. 기둥과 보로 구성된 일반적인 직선의 건축물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있습니다. 이리저리 얽힌 복잡한 곡면의 외관은 사람들에게 강을 헤엄치는 물고기나 항구에 떠 있는 한 척의 배를 연상하게 하지요. 미술관의 중심부는 꽃송이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미술관이 명성을 얻자 도시도 유명해졌습니다. 환경오염이 극심했던 공업도시 빌바오에 극적인 변화가 시작되지요.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시작으로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때문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시재생의 시작점으로도 의미를 가집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도시인 빌바오는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성장한 공업도시입니다. 항구도시이기도 하여 1970년대에는 철강과 조선업의 호황을 누린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철강산업에 진출하며 1980년대 후반부터 도시의 주력 산업이 급속히 침체되기 시작합니다. 빌바오가 속한 바스크 지방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 세력의 테러도 문제였습니다. 근간 산업의 몰락과 정치적 불안은 도시의 쇠락으로 이어졌지요. 실업률은 26%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공장은 방치되었고 범죄는 증가했습니다. 제철소와 조선소가 즐비했기에 환경오염도 심각했습니다. 빌바오 중심인 네르비온(Nervion) 강에는 공장과 조선소로부터 폐기물이 흘러들었습니다. 빌바오는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였음이 분명했지요.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빌바오가 선택한 것은 “문화산업”이었습니다. 경쟁력이 떨어진 철강산업, 도시의 늘어가는 부채와 환경오염을 극복하기 위해 관광과 문화의 도시로 빌바오를 변모시키고자 한 것이지요.
1991년 빌바오의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기 위한 민관협력체 ‘빌바오 메트로폴리-30’이 설립되었습니다. 공공과 민간의 전문가, 학자들이 참여한 빌바오 메트로폴리-30에서는 새로운 빌바오를 만들고자 네르비온 강변을 정비하고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기로 결정했지요.
하지만, 공업도시였던 빌바오는 당시 문화적 기반이 전혀 없었습니다. 네르비온 강변은 공장과 화물 컨테이너가 가득한 장소였습니다. 누가 봐도 미술관이 들어서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지요. 당시 분관을 찾고 있던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도 지역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빌바오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바스크 지방 정부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미술관의 건축 부지와 공사비를 모두 제공하면서 설계자의 선정은 재단에 일임한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1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비용을 모두 감당하고 미술관 설립에 따르는 위험을 떠안기로 한 것이지요. 또 구겐하임 재단에 5천만달러를 우선 지급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며 미술관 유치에 성공합니다.
미술관의 강변 산책로 (출처 : 빌바오 구겐하임 홈페이지 guggenheim-bilbao.eus)
1997년 드디어 네르비온 강변의 낙후된 공장 지역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장했습니다. 개관하자마자 미술관은 빌바오의 상징물이 되었지요. 미술관은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유려한 외관으로 강렬한 첫 인상을 남깁니다. 또 빌바오의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조명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담아주지요.
미술관 외벽의 독특함은 사용된 자재 덕분입니다. 습한 기후의 빌바오에서 금속 자재는 부식되기 쉽습니다. 이에 설계 초기에는 외벽 자재로 부식에 강한 스테인리스스틸이 고려되었지요. 그런데 최종 결정된 것은 무려 티타늄이었습니다. 티타늄은 부식에 강하고 고강도 내구성을 지니고 있어 비행기 소재로 사용됩니다. 무게가 가벼워 시공에도 유리합니다. 다만 무척 비싸지요. 때마침 러시아에서 티타늄이 대량 생산되며 가격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당시에 운 좋게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스테인리스스틸의 미술관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높은 강도를 가진 티타늄은 0.38mm의 얇은 두께로 가공되었습니다. 가볍고 얇은 티타늄 패널은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릴 정도입니다. 33,000개의 티타늄 패널은 은은하게 반짝이며 미술관의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미술관을 구성하는 다른 재료인 석회암 및 유리와도 잘 어울려 보입니다.
미술관 중심부의 천장 (출처 : 구겐하임 홈페이지 https://www.guggenheim.org)
독창적인 외형은 그대로 미술관의 내부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미술관의 중심에는 50m 높이의 커다란 아트리움이 있습니다. 이 아트리움을 둘러가면서 19개의 전시실이 3개층으로 뻗어나가는 구조이지요. 19개의 전시실 중 10개는 사각 평면의 일반적인 전시실이고, 나머지 9개는 미술관의 외관처럼 각기 다른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가장 큰 전시실에 설치되어 있는 폭 30m 길이 130m의 리처드 세라의 작품 ‘시간의 문제'
(출처 : 빌바오 구겐하임 홈페이지 guggenheim-bilbao.eus)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출처 : 빌바오 구겐하임 홈페이지 guggenheim-bilbao.eus)
미술관의 설계 공모는 3명의 유명 건축가(프랭크 게리, 아라타 이소자키, 쿱 힘멜브라우社)를 지명해 진행됐습니다. 그 중 주변 환경의 연계와 독창성을 강조한 프랭크 게리의 안이 선정되었지요. 게리의 설계안은 1990년 상황에서 바라보면 매우 실험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평면보다 형태와 공간이 더 중요했지요. 게리의 스케치로 시작된 비정형의 미술관 구조는 당시의 건축 기술로는 완성되기 어려웠습니다.
3D프로그램인 카티아로 구현한 미술관의 구조 모델링 (출처 : es.wikiarquitectura.com)
실현 불가능해 보이던 천재 건축가의 영감은 수십명의 구조 엔지니어와 3D 모델링 전문가들을 통해 도면이 되었습니다. 공간의 상세한 설계는 3차원 모델로 진행되었지요. 미술관의 복잡한 곡면들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카티아(CATIA)’라는 3D 프로그램 덕분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항공우주기업인 다쏘시스템이 개발한 카티아는 항공기, 자동차, 선박 등의 설계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카티아는 2014년 개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정형 건축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설계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미술관의 시공 중 모습 (출처 : 구겐하임 홈페이지 https://www.guggenheim.org)
미술관의 시공 중 모습 (출처 : 빌바오 구겐하임 홈페이지 guggenheim-bilbao.eus)
미술관은 주변 환경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미술관 부지는 북쪽으로는 네르비온 강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도로 및 철도와 인접해 있습니다. 미술관은 이 주변의 도로와 다리를 포함하여 계획되었습니다. 게리는 미술관에 빌바오의 도시 특성과 주변 환경을 반영하는 것을 중요히 여겼습니다. 이에 몇 가지 설계 원칙을 세웠지요. 다리를 포함하여 미술관 설계하기, 도시와 강변 연결하기, 도심 쪽으로 미술관 입구를 만들고 강변과도 연계하기, 미술관을 강에서 도시로 진입하는 관문이자 도시의 아이콘으로 만들기 등입니다. 게리가 세운 설계 원칙은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출처 : 빌바오 구겐하임 홈페이지 guggenheim-bilbao.eus)
도시를 살리고자 아낌없는 지원을 쏟은 지방 정부와 천재 건축가, 그리고 새로운 건축기술은 20세기를 대표할 건물을 탄생시켰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일반 대중 뿐만 아니라, 건축 비평가들에게도 찬사를 받았습니다. 미술관의 형태는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고, 미술관이 가져온 경제적 효과는 도시계획가들이 참고하는 중요 사례가 되었지요.
사람들은 미술품보다도 미술관을 보기 위해 빌바오로 여행합니다. 처음 미술관의 방문객은 연 8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개관 후 1년 만에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136만명이 방문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매년 100만명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찾아오며 도시의 소득원이 바뀌었습니다. 관광 수입이 증가하고, 관련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개관 후 3년 동안 방문한 약 4백만명의 관광객은 미술관 건설비용에 달하는 세수를 제공했습니다. 빌바오는 꾸준히 변화해갔습니다. 죽어가던 강이 살아나고,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호텔과 각종 문화시설, 컨벤션 시설이 들어섰습니다.
물론 미술관 하나로 도시 전체가 변했다고 말하기는 부족해 보입니다. 도시를 바꾸기 위한 빌바오의 꾸준한 노력이 가장 중요했겠지요. 하지만 미술관이 빌바오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큰 동력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빌바오 효과’, ‘구겐하임 효과’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많은 도시들이 빌바오의 사례에 관심을 갖지요. 미술관이 건설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여전히 도시 빌바오의 아이콘이자 도시를 살린 가장 유명한 건축물로 남아있습니다.
※ 원문: 한국건설기술인협회지 ‘건설기술인’, 2017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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