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부문 임직원 칼럼(이경준 책임)

 


지난 2월, 왁자지껄했던 설날을 보내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2018년을 정신 없이 보내고 나름 힘겹게 얻어낸 남은 6일간의 휴가. 이제 뭐 하지? 당초 방에 틀어박혀 원 없이 자면서 푹 쉬자고 생각해왔던 터라, 별다른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충전만 하기에는 6일은 너무 길었죠. 


1시간 남짓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무작정 떠나자! 모니터에 세계지도를 띄워 놓고 가보지 않은 곳들을 살펴보다 문득 런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왠지 손흥민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았죠. 그리고 그날 저녁 무작정 런던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다 어색하고 무섭다

 


“나는 죽어도 혼자서는 여행을 못 가겠어… 혼자 가면 무슨 재미야?” 예전부터 자주 들어왔던 이 말은 사실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 여행이란 친구들과 함께였고 첫 해외여행 역시 가족과 함께,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기에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입사 초기 긴급업무로 밤을 꼬박 새우며 밝아오던 하늘을 바라보던 어떤 날, 쌓이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충동적으로 배낭 하나를 매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커플들이 득실거리는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기 싫어 갑자기 크리스마스 이브에 홍콩 야경을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야말로 대혼돈의 크리스마스였지만,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을 확신했습니다. 두 곳 모두 도착하기 전까지는 후회의 연속이었습니다. 계획도 없이 혼자 가도 괜찮을지, 누군가 날 불쌍하게 쳐다보진 않을지, 괜히 돈과 시간만 날리는 건 아닐지… 너무 대책 없이 충동적이었나 계속 후회를 했죠.


하지만, 막상 와보니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완벽한 자유와 마비되는 금전감각, 여행지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니, 혼자 오니까 더 좋잖아? 


왜 혼자 떠나는가

 


본격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사실 당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베트남 현장 파견 근무 중, 4개월마다 정기휴가를 나오면 매번 한국에서 술만 마시다 들어가기 일쑤였죠. 반복되던 휴가를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보고자 고민하다 혼자 훌쩍 떠나게 되었습니다. 차츰 혼행이 익숙해지고 나니, 마치 중독된 것 같았습니다.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익숙한 공간이 편할 수도 있겠지만, 생소한 환경에서 맞이하는 시간이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데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있을 때 스스로를 보다 더 천천히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을 ‘포맷한다’ 라고 생각합니다. 빠른 포맷을 위해서 혼행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꼭 뭔가를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으로도 잠시 잊는 것입니다. 꼬여버린 인간관계, 쌓여가는 업무 스트레스, 불확실한 미래, 전 여친의 근황 등이 날 어지럽힐 때 또는 그저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자신만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할 때 혼자 어디론가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완벽한 자유란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베트남의 사파, 다낭, 호이안, 후에, 나트랑, 호치민, 푸꾸옥과 태국 크라비, 홍콩, 마카오, 싱가폴, 대만 타이페이, 캄보디아 시엠립, 런던,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혼자 다녀왔습니다. 모두 한번쯤은 들어보고 다녀왔을 법한 흔한 관광지이지만, 나에게 모든 장소들이 특별했던 이유는 ‘혼자만의 완벽한 자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힘들게 휴가날짜를 맞출 필요도 없죠. 가고 싶다면 하루 전이라도, 당일이라도 배낭 하나만 매고 떠나면 됩니다. 내 맘대로 갔다가 내 맘대로 오고, 내가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 메뉴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자유, 너무 좋았던 곳에 더 머무를 수 있는 자유, 즉흥적으로 일정을 수정할 수 있는 자유, 필요할 때 동행을 만날 수 있는 자유, 이걸 살지 말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자유, 이 모든 자유를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끼리 여행 갔다가 남남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기본적인 체력과 식성, 숙소 선호도와 관광 취향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결국 크게 다투거나 서먹해져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실제로 여행 중에 “난 안 갈 거니까 너 혼자나 가!”라는 일갈을 두 번이나 목격했습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이러한 걱정 없이 그저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 결정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평소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고르지 못해 많이 괴로워하는 사람이라면, 심각한 내적 갈등에 시달릴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별 다른 계획 없이 떠나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가 보고 싶고, 내가 듣고 싶고, 내가 하고 싶고, 내가 느끼고 싶은 것들을 본능적으로 찾아 다니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 행복해지는지를 알 수 있어요. 


저는 현지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볼 때 행복을 느낍니다. 미술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명작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의 그 환희는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이론적으로 잘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가슴속 무언가 촉촉하게(?) 차오르는 감정의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6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오롯이 혼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죠. 또한, 사람이 많이 없는 해변가에서 딱 맥주 한 캔을 마실 때가 가장 좋습니다. 현지 전통시장에 가서 처음 보는 식재료들과 음식들을 먹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잠결에 호텔 조식을 배불리 먹고 돌아와 다시 스르르 잠을 청할 때는 천국이 따로 없죠.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혼자 여행을 다니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해도 괜찮다. 혼자 온 여행이라도 가끔씩은 저녁에 맥주 한잔을 하며 수다를 떨고 싶을 때도 있고, 해보고 싶었던 액티비티가 있다면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맛보고 싶은데 혼자 시키기 부담스러울 때도 있죠.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고 해서 꼭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니라는 법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그 목적에 맞는 동행을 찾으면 됩니다. 요즘은 혼행 족들이 워낙 많고 다양한 커뮤니티와 어플을 통해 동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아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처음 보는 사람들과 여행 중 에피소드를 풀기도 하고, 서로 여행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며 이곳에 오게 된 각자의 사연에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하죠. 그저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끼리 잠시나마 함께 하는 것도 작지만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같이 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면? 같이 할 사람들을 찾으면 됩니다.


모든 순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거대한 대자연에 완전히 압도당하거나 환상적인 풍광에 감정이 주체가 안되어 가슴이 벅차 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대박이다’를 수 백 번 외칠 때,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폭발하는 감정을 함께 공유한다면, 함께 소리지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면 이 행복감은 몇 배로 커질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죠.


결국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나중에 꼭 가족들과, 내 사람과 함께 다시 와야지… 라고 다짐하며 돌아서는 순간들이 참 아쉽습니다. 좋은 건 함께 했을 때 더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개인의 안전입니다. 홀로 이동 시 상대적으로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 것이 사실이고, 혼자라는 해방감에 지나치게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으므로 아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4년전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 때, 일몰 명소라는 외진 사원에서 석양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진 적이 있었습니다. 지도를 볼 수 없게 되고 손전등도 켤 수 없는 상황, 해가 져서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버렸죠. 오로지 별빛만이 보이는 가로등 없는 캄캄한 시골길을 헤매는데 어찌나 무서웠는지… 온 몸이 눈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캄보디아 학생들의 도움으로 근처 마을로 나올 수 있었지만, 다시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합니다.


앙코르 고대사원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눈물 나게 황홀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정말 눈물겨웠어요. 혼자일수록 더욱 더 개인 안전에 유의하고, 절대 무리한 일정을 잡거나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명심 또 명심! 


그래도 혼자 떠나 보길 추천한다

 


함께 하는 여행은 즐겁습니다. 일정을 함께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같이 맛있는 것을 먹고 잠들기 전 오늘 여행이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며 느껴지는 행복이 있죠.


하지만, 한 번쯤은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을 가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여행, 가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 내가 원하는 것들만 찾아 다닐 수 있는 여행, 그 동안 고생했던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고 싶은 여행.


혼행은 고생했던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일단 떠나보세요! 처음이라면 어색할 수 있지만, 이 매력에 한 번 빠지게 된다면 다녀오자 마자 다음 여행지를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권, 지갑, 스마트폰만 챙기고 입을 옷만 대충 싸면 준비는 끝. 한 번쯤은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 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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