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건축]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하 하디드의 가장 완벽한 세계
각도와 직선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 생활의 터전인 자연, 그 규정할 수 없는 비정형의 세계로 안내하는 자하 하디드와 그의 건축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속 기술을 만나본다.
360°의 가장 완벽한 형태, 곡선
우리는 언제부터 사각형 상자 같은 집에서 살게 됐을까. 세모나거나 둥근 형태의 집은 왜 좀처럼 보기 드물까. 합리적임과 규격이라는 이름 아래 설계된 건물은 어쩌면 인간의 사유마저 각지게 만든 건 아닐까.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건축물은 마치 태초의 인간이 살던 동굴을 연상시킨다. 네모 반듯한 벽면과 바닥, 창문, 가구들을 결코 ‘당연스럽게’ 허용하지 않는 그의 공간은 흡사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관습과 편견의 중력을 거부한다. 그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다. 자연을 닮은 건축. 하디드의 건축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을 고스란히 녹여낸 것이다.
동대문 쇼핑가와 어우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외관 전경
2014년 DDP의 문을 연 개관전은 자하 하디드의 <자하 하디드 360° 展>이었다. 이어 작년 타계한 세계 디자인계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DDP에서 회고전 <알레산드로 멘디니展-디자인으로 쓴 시>를 진행했다. 디자인 매거진 <도무스(domus)>의 편집장을 역임하며 당시 신인에 불과했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발굴해낸 인물이다. 그는 하디드의 공간에서 전시를 열게 돼 감회가 남다름을 전하며 “DDP야말로 하디드의 최고 완성작”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직선으로 직조된 내부가 아닌 비정형의 공간에서 전시를 마련하는 일의 어려움과, 동시에 아티스트로서 새롭게 도전하는 전시 구성의 기꺼움을 말이다. 그는 하디드가 내어준 미션을 어떻게 풀지 탐구하는 호기심 많은 예술가 같았다. 사실 DDP에서 전시를 꾸리는 많은 예술가들이 그동안 진행해온 익숙한 사각의 갤러리가 아닌, 유선형 공간에서의 전시 작업을 색다른 프로젝트로 여긴다.
개중엔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꼴라니도 있다. 마찬가지로 DDP에서 <자연을 디자인하다-루이지 꼴라니 특별전>을 연 바 있는 꼴라니는 유기적 디자인, ‘바이오디자인(BioDesign)’의 창시자로 불리며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세계 거장 디자이너들이 전시를 열 때마다 공간적 특별함을 언급하는 DDP는 우리에게 비정형 건축의 미학과 건축 기술의 위대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왼쪽부터 <자하 하디드 360°>, <알레산드로 멘디니展 - 디자인으로 쓴 시(The Poetry of Design)>,
<자연을 디자인하다 : 루이지 꼴라니 특별전> 전시 포스터
삼성물산이 완성한 45,133장 외장패널 퍼즐
1925년에 태어난 동대문운동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설계 공모전은 세계 건축가들의 각축장이었다. 여태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던 프리츠커상 수상자 하디드의 설계안과 기존 공간을 보존하는 설계안을 놓고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한창 도시 디자인 구축 열기가 뜨겁던 때였다. 빌바오 효과(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가 건축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성공한 도시 재생 사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주기에 충분했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시공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하디드의 설계를 현실화하기엔 기존 2D 도면 설계방식으론 불가능했던 것.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은 먼저 하디드가 제안해준 세계 외장패널 업체 두 곳, 영국 ‘포르텍스(Fortexx)’와 ‘에베네(Ebener)’사 현장을 견학했다. 설계안대로라면 45,133장의 외장패널은 모두 다른 형태라 각기 새로운 형틀로 만들어야 했다. 사실상 두 업체는 구시대적인 제작 방식을 취하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패널 제작 기간만 무려 20년이 소요됐다.
삼성물산이 새롭게 도입한 3차원 입체설계
방식 BIM 데이터를 통한 패널 제작 과정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렇게 조선 설계 분야의 곡면판 성형 기술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한 것이 다점성형프레스 장비다. 3차원 입체설계 방식인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데이터대로 패널을 찍어내면 형틀 제작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널 형상의 정확도 또한 기존 수공업 제작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여기에 제품이 주름 잡히는 현상은 항공기 동체 제작에 사용하는 장비를 활용해 금속재를 당겨 찍어내는 방법으로 풀어냈고, 패널을 동일한 형태로 절단하는 문제는 자동차 제작에 사용하는 5축 레이저 절단 기술을 도입해 해결했다.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신기술 건축 시공이었을 DDP 건축 과정은 당시 한국의 기술력을 염려하던 자하 하디드 측 설계자들에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삼성물산은 하디드가 던진 각기 다른 45,133의 퍼즐 조각을 완벽하게 맞춰낸 것이다.
우리 일상에 스며든 DDP 건축
선박, 항공기, 자동차 제작에 사용되던 기술력을 모두 끌어 모아 탄생시킨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우리가 일상에서 밀접하게 접해온 기술을 총동원한 제작 과정이 실제 우주선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하디드의 건축 세계에서 만나는 비정형의 건축 미학을 단순히 도자기가 지닌 비정형 예술성이나 조약돌 같은 자연물에만 빗댈 수 없는 이유다. 특히 DDP 공간의 독특한 점은 내부에 기둥이 없다는 것. 바깥에서 보면 건물 자체가 너무도 거대해 어떻게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이 없는지 의아할 법하다. 이는 초대형 지붕을 지탱하는 메가트러스 공법으로 스페이스 프레임을 적용한 덕분이다. 다리 같은 큰 구조물을 건축할 때 주로 사용하는 캔틸레버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한쪽만 지지되고 한쪽 끝은 돌출된 형태의 구조물이다.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위), 알바 알토의 Armchair 42, (c) Maija Holma, Alvar Aalto Museum
이런 캔틸레버 기술은 힘을 지탱하는 지지대의 균형을 이용한 것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이룬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자에도 캔틸레버 기술이 녹아 있는데, 측면에서 보면 ‘ㄷ’자의 형태를 취한다.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보여주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B33’, ‘바실리 체어’,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MR20 의자’ 등이 그 예다. 강하고 가벼우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강철관을 사용해 편리한 가구를 제안한 것. 핀란드의 국민 디자이너 알바 알토는 강철관 대신 북유럽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작나무를 사용했다. 캔틸레버 의자의 등장은 곧 가구의 기능성과 조형성의 합일을 가져왔다. 장식을 걷어낸, 군더더기 없는 바우하우스, 바로 북유럽디자인으로 대표되는 모던 디자인이다. 작년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전세계 디자인계는 다시 한번 바우하우스 정신을 되새겼고, 속속들이 디자이너들과 그 작품들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새삼스레 진열된 유산들은 언제나 우리 일상 속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다. DDP의 패널 지붕 위에 올라앉는 것과 다름없는, 캔틸레버 의자도 그 중 하나다.
Dongdaemun Design Plaza (DDP) from Zaha Hadid Architects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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