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홍 교수 칼럼] 공간에서 콘텐츠의 중요성 – 책이라는 소재를 통한 만남
안녕하세요~ 김이홍 교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교수님은 지난 글에 이어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위한 고민과 해결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오셨는데요~ 지난 연재에서 건축물과 공간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럼 김이홍 교수님께서 직접 건축설계자로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느낀 도시재생 두 번째 이야기, 함께 살펴볼까요? XD
공간에서 콘텐츠가 하는 역할
안녕하세요. 김이홍 교수입니다. ‘서계동 청파언덕집’의 설계자로서 직접 설계와 시공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 드렸었는데요. 이번 연재에서도 건축물 혼자서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말해 보려고 합니다.
훌륭한 하드웨어라도 적합한 소프트웨어가 장착되어야만 최적의 시스템이 구축되듯,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지역성, 주민과의 협업, 적합한 용도 등을 고려한 공간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공간을 운영할 운영자와의 대화를 통해 더욱 확신이 생겼는데요. 궁극적으로는 공간이나 콘텐츠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융합되어야 시너지가 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콘텐츠가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도시재생 사업에서 성공적인 결과물이란 무엇일까요?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사업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시민과 지역 주민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일의 책임 주체가 없다는 것이 민간개발 프로젝트와의 비교에서도 큰 차이점이자 유의해야 할 현실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결과물이란 오래도록 지속해서 영속될 공간과 프로젝트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시작단계부터 참여자들의 대화와 협업으로 기획된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특히,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단기적인 운영 주체 또는 지역주민들이 조합형식으로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영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며 공간을 명확히 규정할 컨셉과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책을 이용한 공간 기획 트렌드를 살펴보자
최근에 공간 기획 트렌드에 책을 접목한 콘텐츠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흔히 책으로 이루어진 공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사실 저는 매년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계 개론 수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빈도가 낮아지는 걸 실감했기 때문에 학기 초 도서관 세미나실에서 수업을 한 주씩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처럼 학생들에게 도서관의 첫 방문을 유도하는 목적을 갖고 진행하고 있는데요. 학기 초 서고를 같이 둘러보며 ‘오랜만에 맡는 종이 냄새’라고 도서관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한 학생의 말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 디지털 시대의 기술로 종이 책의 수요는 줄어들고, 스마트폰과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경험에서 느낀 것처럼 저는 여전히 종이책이 심오한 매력이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여서 공간 기획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미친다고 믿습니다.
여러 매력 때문에 종이책은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위한 콘텐츠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매력을 통해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위한 콘텐츠의 덕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종이책은 하나의 감각을 뛰어넘어 오감을 자극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종이와 잉크가 주는 후각적인 요소도 있고, 손에 쥐고 종이를 넘기며 읽어가는 행위도 포함되겠죠?
또한, 책은 인간에게 지적 호기심과 소유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사람이 집 한쪽에 책들로 가득 찬 책장을 꿈꾸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책은 기원전부터 존재했으나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책이 출판되는 것을 보면, 끊임없이 발생하는 연속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별마당 도서관: 휴식과 만남, 그리고 책을 주제로 소통하는 문화 감성 공간
책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이러한 덕목들이 잘 표현되고,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이 유발되고 있는 두 장소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별마당 도서관’입니다. 2017년 5월에 개관한 ‘별마당 도서관’은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중심인 센트럴플라자에 있습니다. 별마당 도서관은 총 2,800㎡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정까지 책장이 닿아 있어 규모 면에서도 강한 인상을 주는 공간입니다. 13m 높이 서가에는 총 5만 여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습니다.
거대한 코엑스몰의 중심 역할을 하며 놀라운 성과를 이루는 공간입니다. 개관 후, 일 년 동안 방문자 수가 약 2,10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명소로 자리 잡았고, 덕분에 코엑스몰의 방문자까지 자연스럽게 늘어나 입점 매장의 매출 증대 효과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웅장한 공간에서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작은 책이며, 그 책들이 모여 만든 분위기가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서가의 은은한 불빛, 편히 책을 읽고 컴퓨터 작업을 가능케 한 가구 계획 등도 영향을 주지만, 책은 분명 사람의 발길을 멈추고 쉬어갈 여유로움을 주는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스트랜드 북스토어 [Strand Bookstore]: 도심 속의 보물섬 같은 책방
출처 : Wikimedia Commons ( Postdlf )
두 번째 장소는 ‘스트랜드 북스토어’입니다. 제가 뉴욕에서 보낸 4년의 추억을 돌이켜보면 ‘스트랜드 북스토어 [Strand Bookstore]’라는 서점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서점은 뉴욕 시민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장소이며 방문객들도 꼭 들러보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1927년 설립된 스트랜드 북스토어는 ‘책을 사랑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창립자 벤 바스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8마일이었던 서가의 길이는 2018년 18마일(약 29km)에 이르는 서점이 되었는데요. 거창하게 기획되지는 않았지만, 서가 길이가 이곳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인가를 말해줍니다.
중고 서적부터 신규 서적까지 총 250만 권의 책들을 보유하고 있고, 하루 평균 5천 여권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으로 책 구매가 늘어나며 많은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이 서점은 신규 서적도 진열하고 판매하지만, 뉴욕에서 규모가 큰 중고서점인 만큼 인위적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서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지역의 랜드마크 건물의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4개 층의 1,500평 실내는 자연스러운 책의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걸으며 먼지가 소복이 쌓인 책 산더미 속에서 나만의 책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느낍니다.
사례로 다룬 서울의 ‘별마당 도서관’과 미국 뉴욕의 ‘스트랜드 북스토어’는 기획부터 태생이 다른 공간입니다. 하지만 공통으로 책이 사람을 매료하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뚜렷한 운영 주체가 없는 불안 요소를 지니는 대부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지속해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간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닌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콘텐츠가 존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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