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삼성물산 건설부문 빌딩2팀(상품디자인그룹)에서 ‘주택인테리어디자인’ 파트리더를 맡고 있는 금귀선 수석입니다. 8월의 뜨거운 여름 휴가는 눈깜짝할 새 지나가버리고 추석 명절 연휴를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어느덧 가을이 훌쩍 다가왔네요.
이번 글에서는 여름휴가로 다녀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행블로그를 보면 맛집과 일정 등을 이야기하곤 하지요. 그것도 좋지만 제가 여행한 곳의 공간 이야기는 어떨까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유럽, ‘작은 유럽’으로 불리며 요즘 20~30대 젊은 친구들에게 핫한 도시 블라디보스토크. 이 도시로 떠나게 된 이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니까요~”가 아니고 “그냥 가까우니까” 였습니다. 실망하셨나요? :)
자매도시 기념공원의 ‘한-러 우호150주년 기념비’와 ‘우수리스크’에 있는 헤이그특사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부끄럽습니다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제시대 독립군의 근거지였고 고려인 강제이주 등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깃든 그 유명한 연해주가 여기인지도 몰랐지요. 바쁜 업무일정에 짧은 휴가를 가려니 가까운 곳이여야 한다며 무작정 비행기부터 예약을 했고,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태풍 영향으로 비가 억수처럼 오다가도 갑자기 날이 개면 따가운 햇살로 더워지는 날씨 덕에 우의와 얇은 점퍼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 날씨 운이 없었던 걸까요? 있었던 걸까요? :D 여하튼 저에게 주어진 여행은 늘 배우고 생각할 것이 많은 공부의 시간이기도 한데요. 이번 여행도 당연히 그랬습니다.
책으로 공부하는 것과 달리 직접 생생한 현장을 보고 느끼고 습득하는 것이 진짜 공부가 아닐까요. 저의 10살 아들은 “엄마는 여행온다고 해놓고선… 왜 역사공부를 하는거야…“라고 투덜거렸지만, 어느새 역사의 현장으로 쏙 빠졌답니다. 자녀들이 12살 정도 되면 꼭 한번 방문하여 역사 전문 가이드와 함께 역사공부도 함께 해보는 것을 강력 추천 드립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제가 둘러본 블라디보스토크 공간을 살펴볼까요? 4명이 동시에 묵을 호텔방도 없어 2명씩 따로따로 자야하고 그나마도 늦은 예약으로 인해 선택할 만한 호텔도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그러다 많은 인원이 지내기에 적합한 에어비앤비를 한번 사용해보자 싶었어요. 한번 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 좀 걱정은 되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지라 용기내어 예약을 했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현대적인 시설과 멋진 뷰를 갖춘 세련된 아파트들도 많았지만, 러시아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는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머물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안나(호스트 이름)의 오래된 아파트’.
여느 유럽의 건물들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로 진입하면 중정이 있고 중정을 지나 건물로 들어갑니다. 리뷰를 통해 오래된 숙소의 불편함을 예상하고 갔었지만, 실제로 아파트 건물 입구와 계단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4층 집까지 캐리어를 들고 올라갈 때엔 정말이지 하늘이 노랬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는 이 아파트의 외관은 무척이나 낡았지만, 룸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 여행객이 지내기엔 손색이 없었답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흡연이 자유로운 이 곳에서는 복도에 담배냄새가 자욱하지만 잠시 숨을 멈추고 계단을 오르면 문제없답니다. :-D
우선 4명이 머물기 위해선 침대 갯수가 넉넉해야 했는데요. 소파베드를 포함해서 더블사이즈로 3개의 침대가 있어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답니다. (소파베드가 보기보다 은근 편하더라구요, 너무 물컹물컹 푹신했던 침대 매트리스보다 훨씬 편했다는….) 그리고 키 포인트는 욕실~! 사진의 평면처럼 변기와 욕실이 분리되어 있어요. 3, 4인 이상이 지내는 공간에서 이런 욕실 플랜은 최적이겠죠?
저도 래미안 아파트 평면을 계획할 때 꼭 분리하고 싶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반 욕실보다 공간을 좀 더 할애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은 플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공간들은 어떨까요?
인테리어 컨셉은 로맨틱 빈티지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White Vintage Downtown Apartment’ 라고 호스트 안나가 소개한 그대로 입니다. 작은 면적에 비해 3m를 훌쩍 넘는 높은 천장고는 넓고 쾌적한 공간감을 줍니다. 호스트가 올린 사진 대비 훨씬 넓은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거실 한쪽에는 작은 발코니가 있어 잠깐 나가서 바깥 바람 쐬기에도 좋구요. 환기만 할 수 있도록 틸트 기능도 있는 여닫이도어가 설치되어 있어요. 하지만 방충망은 없어서 밤에 잠깐 열어놓았더니 날아든 벌레를 잡느라 고생했어요.
소파베드 뒷벽은 블라디보스토크 어디에서나 쉽게 볼수 있던, 저희 11살 딸이 이 집에서 이 벽이 제일 예쁘다고 한 진짜 벽돌 위에 페인트를 칠한 빈티지 마감인데요. 고풍스러움과 멋스러움을 동시에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벽들은 골드 빛이 가미된 스페셜 도장을 하였는데, 미장으로 한 바탕면 처리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장이 높아서 취향에 맞는 팬던트 등으로 공간에 포인트를 줘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요. 게다가 굳이 간접등을 만들지 않고 다운라이트등으로도 은은한 조명 효과를 볼수 있답니다. 단, 주의해야 할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다운라이트등을 벽에 바짝 붙여서 설치하면 동그랗게 조명 레이어가 생겨서 보기 싫어지는데요. 은은한 월워시 효과를 주고싶다면 벽에서 30~40cm정도 띄워서 설치하면 은은하게 벽에 비쳐서 한층 더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사진과 달리 실제로는 훨씬 더 은은하게 무드가 연출되었답니다. 물론 이런 공간은 거실처럼 좀 커야 효과적이겠지요? :)
화장실은 화이트톤과 가장 무난하게 잘 매치되는 그레이 타일로 포인트를 줘서 깔끔하게 잘 정리되었고, 샤워하고 나서 유리에 물때를 청소할 필요없는 샤워커튼을 설치했네요.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세면대 깊이가 25cm정도로 엄청 깊어서 세수할 때나 양치할 때 물이 옷에 튀지 않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리고 가로90cm, 세로110cm의 좁은 변기 공간에 낮게 설치된 딱10cm 깊이의 선반은 두루마리 화장지, 디퓨져, 탈취스프레이 등 소품을 올려놓기 최적이었답니다. 공간이 협소하니 팔에 걸리지 않도록 낮고 얕게 설치된 선반을 보며 세심하게 신경 쓴 인테리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주 청소하기 싫으신 분은 이런 빈티지 느낌의 마루바닥재를 권장합니다. 머리카락이 떨어졌는지 먼지가 굴러다니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 집에서는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다녀서 더더욱 저의 발바닥 센서를 활용하지 못했지만 3일 내내 더러운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 이제 밖으로 나가볼까요?
다운타운의 중심인 아르바트 거리와 도시의 전경입니다. 진짜 유럽과 똑같지요? 약간 고풍스러움이 덜하긴 합니다만, 유럽의 여느 거리와 같습니다. 아르바트 거리에 (한국에서) 유명한 팬케이크 집이 있지만, 독립운동가 ‘최재형’ 생가로 추정되는 곳도 이 거리에 있다는 사실! 작은 금속판이 집 앞에 붙여져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하늘이 쾌청해보여 공기도 상쾌할 것 같지만, 사실은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 매연으로 인해 유유자적 걷기에는 그렇게 쾌적하진 않습니다.
특히 여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기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갈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가슴이 뜁니다. 1주일 정도 걸리는 기차 안에서는 스마트폰 인터넷도 안되고 전화도 안된다고 하니 묵언수행하거나 동행자(부부 혹은 자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인 것 같아요. 사이가 좋아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꼭 함께 타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행에 ‘맛’이 빠질 수는 없지요. 맛평점이 높은 스테이크집으로 고고! 내부 인테리어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트렌디하면서도 고급감이 느껴지게 디자인을 잘 했는데요.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소’와 ‘목장’이 연상되는 여러가지 소품들을 활용하여 위트있게 표현한 것이 재미있었구요. 특히 화장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면대 아래 우유통이 휴지통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가 한글 메뉴판이 따로 있어요. 그런데 번역이 좀…. ’패거리를 위한 메뉴’라니 어찌나 웃었던지요. 저희도 저런 실수 많이 하겠지요? 외국어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새삼 느꼈습니다. ‘댑버거’라고 한국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햄버거 집이 있는데요. 이 레스토랑과 그 버거집을 같은 회사에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기 버거가 댑버거랑 똑같다고 하니 아침부터 줄서지 마시고, 여기서 드시면 될 것 같아요. (가격 비교까진 못했습니다) 진짜 맛나긴 하더라구요. 물론 스테이크도요!
아르바트 거리를 따라 바다 쪽으로 쭈욱 내려가면 해양공원이 있습니다. 여기는 공원 입구에 있는 유명한 라면집입니다. 랍스터와 곰새우가 천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라면에 랍스터를 넣어서 먹네요. 아마도 블라디보스토크을 오시는 모든 한국분들이 들르는 필수 코스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여기도 정말 맛있습니다!
러시아의 상징 중 하나인 ‘마트료시카’ 목각 인형 아시지요? 세계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어린이들을 인형처럼 표현해서 그린 벽이 정말 멋지고 예쁘답니다. 붉은 벽돌의 따스한 감성을 강조하는 나뭇가지 장식물이며 곳곳에 숨은 아기자기한 포인트들도 센스 만점! 물론 여기도 기본 천장고는 3m이상입니다. 그래서 더 좋아보이는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2017년에 개관한 아쿠아리움을 소개해드릴게요. 우리나라 아쿠아리움보다 못하다고 평하시는 분들도 꽤 있으시던데요. 해양생물 종류 등등 여러가지 비교 포인트가 있겠지만,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는 꼭 방문해 보시길 강추드립니다. 하루 2차례 공연하는 ‘돌고래쇼’가 유명한데요. 워낙 인기가 많아서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를 해야 합니다.
우선 입구에 들어가면 실제 크기의 상어와 고래 조형물들이 2개의 층으로 오픈된 공간에 달려있어요. 고래가 유영하는 엄청나게 큰 영상과 함께 서있노라면 진짜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답니다.
일반적인 아쿠아리움은 물에 사는 생물에만 집중을 한다면 여기는 지구의 탄생부터 고대 생물을 지나 현재까지 지구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요. 고대생물은 볼수 없기에 조형물로 그 실제 크기를 보여주는데 공룡에 관심 많은 아이들이라면 정말 좋아할거라 생각합니다.
화려한 해양생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바닷속으로 직접 들어와 탐험하는 듯한 뭔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충실하게 연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생각됩니다. 플랑크톤 같은 마이크로 해양 생물을 자세히 설명한 공간이라든지 신화 속 이야기를 휴식공간에 보여주는 재미있는 공간도 있었답니다.
남다른 스케일의 식물원은 정말 멋지답니다. 사진으로 표현이 제대로 안되어 무척 아쉬운데요. 10m는 족히 더 되어 보이는 엄청난 천장고의 열대우림 컨셉으로 꾸며진 식물원은 아마존에 실제로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바삐 움직이며 봐야해서 세세히 보지 못해 조금 아쉬운 아쿠아리움 투어였네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여행을 떠날 때 보다 더 설레입니다. 내 집으로, 나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 순간이 고맙고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나 봅니다. 나의 평범한 어쩌면 조금은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럼 다음 기사는 찬바람 부는 날 인사드릴 것 같으니 그 동안 건강유의 하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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