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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월]- 건설현장 속의 알수 없는 용어들 편

Story Builder/쉽게 배우는 건설

by 삼성물산건설부문 2011. 8. 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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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때 첫 현장 발령을 받아서 근무할 때였다.
선배 주임님한테 무전이 날라왔다.

"노기사, 저기 계단 오도리바랑 샤끼리 사이 청소좀 하고 사시낑좀 제대로 뽑으라 그래!"

"잘 못들었습니다. 재송신 바랍니다."

"오도리바 옆에 사시낑 제대로 뽑고, 샤끼리 삿뽀도 제대로 하고, 면끼 손 좀 보라고~!!!"

 

분명 듣긴 들었는데 우리말인것 같긴 한데 무슨 소린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직접 가서 물어보기로 하고선
"주임님, 지금 어디계세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까했던 우리말을 우리말로 해석좀 해달라고 했더니 그 뜻은 이러했다.
계단실에 가서 계단참과 경사진 부분 사이에 이음철근 시공을 손보고
경사부분 하부 동바리 받침 제대로 하고
측면에 면귀 처리부분에 못치기 좀 더하란 얘기였다.


현장에 가면 일본어를 많이 사용해서 못알아듣는 일이 많을 거라더니 진짜구나..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저기 몇동 몇호에 가면 마지끼리 쪽에 하리 시다랑 거실 하바끼 쪽에 가네난 거 있어.
하스리공한테 빨리 하스리하고 땜빵하라그래."

"......(ㅡㅡ;;)"

 

할 수 없이 또 전화해서 우리말 풀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세대간벽 발코니에 있는 보 밑에 수직수평이 잘 안맞으니 수정하고, 거실 걸레받이 부착부분에
수평이 안맞으니 할석작업자에게 연락해서 할석하고 미장을 하란 이야기다.)

 

그 중에 최고는 바로 타워신호였다.
타워크레인 신호는 무전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용어는 못 알아듣는 수준이 아니라
새벽 어시장 경매할 때나 들을 수 있을 듯한 이상한 암호 같았다.


"자~ 스라게, 스라게, 스라게,,,, 스라게 스돕~, 트로리 안으로, 안으로, 스도옵~

 우싱, 우싱, 우~ 싱, 스도~옵! 깔짝 마개, 깔짝~...."

"우와~ 신기하다. 저게 뭔소리에요? 저렇게 해도 다 알아듣나봐요?"

"응, 야 마침 잘됐다. 저기 12층 슈퍼덱에 보면 오비끼 한다발 있어.

 그것좀 타워로 내리고 와."

"네???"

"잘 들어. 스라게는 내리는거, 마개는 올리는거, 우싱은 우로 스윙, 그럼 좌싱은 알겄고,

 와이어로 잘 묶어서 내려~ 그거 급한거야!"

선배는 작업지시만 하고 휙 사라져버렸다.

 

'아,,, 망했다.'

"저기,,타워기사님~  이거 한다발 내려야 되는데요,, 타워좀 이쪽으로 돌려주세요."

"마개~ 아니 스라게,, 스라게,, 아니 그냥 쭉 내려주세요."

 

다행히 타워운전석에서 보이는 위치인지라 쉽게 와이어로프와 샤클은 무사히 내 자리까지 왔다.
음.. 이걸 이렇게 묶어서 올리면 된단 말이지...
하지만 와이어로프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그걸 굽혀서 각재 한다발 밑으로 넣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


한 5분간 낑낑대고 쑤셔넣고 있는데, 참다못한 타워기사 왈,

"거기 옆에 철근 기레빠시 있잖아요, 그걸로 와야 끝에 넣어서 확 땡겨요!"

아,, 기레빠시는 또 뭐냐..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하는데, 마침 형틀 작업자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비키세요."

그러더니 철근 한가닥으로 와이어로프 고리에 훅 집어넣어서 반대편에서 확 땡겨
바로 한다발을
결속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자 타워기사님,, 이제 스라게요~,, 아니 마개요,, 올려주세요~~!!!"

"노기사님, 진짜 자세 안나오네~"

ㅡㅡ;;;;;

심지어는 후배한테서 들은 작업자간 용어 혼선으로 빚게 된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몇 호에 가셔서 조적면 노바시(높여)좀 해주세요"

"네~"

몇 시간 후 세대 방문했을 때 조적면 노바시가 아니라 바라시(해체)가 되어있었다.

"제가 노바시 하라고 했잖아요!!"

"보세요, 노바시 해놨잖아요!"

"아띠, 이게 바라시지 노바시에요?!?!"

"어.....이런... ㅡㅡ;;"

 

하루 하루 지날때마다 모르는 용어는 계속 늘어갔고 이러다간 내가 빨리 용어를 배우거나
제대로 된 용어를 교육시켜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 날 이후 우리말과 속어를 엑셀파일에 쫘악 리스트업해서 회사게시판에
'건설현장용어-이제는 바꿉시다'란 제목으로 등록하고,
속어 중 자주 쓰이는 용어 30여가지를 추려서 앞면은 속어, 뒷면은 바른말이 적히도록
A3 사이즈로 용어 교육판을 제작했다.

 

매일 아침조회때마다 용어보드판 2개씩 들고 나가서 바른용어 사용운동을 했다.
내가 선창하면 근로자들이 따라하는 식이다.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챙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신입사원이니까 이정도는
해줘야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실시했다.

 

하지만 관습이 어디 그리 쉽게 바뀔까..
효과는 미미했고 비웃는 사람, 신경 안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작업자들은 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마치 전문용어나 사용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었고
직원들조차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여파일까?
최근에는 속어가 많이 순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타워크레인 신호도 스라게, 마게가 아닌 내리세요, 올리세요라고 하는 근로자들도 많이 생겼다.

 

지금도 일본어 공부를 계속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일본어와 일본어가 변형되어 쓰이는
속어는 분명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언어에 사회성이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현장속어를
전문용어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요즘엔 또다른 문제도 생겼다.
속어를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를 떠나서 근로자들이 현장 일을 기피하면서
우리말을 알아듣는
근로자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마다 간판에 외국어를 병기하도록 지시하고 있는데
이 외국어라함은 영어일까, 중국어일까, 아니면 또 다른 나라의 언어가 될까?

 

아무쪼록 북한의 언어처럼 조금은 억지스러울 정도의 우리말까진 아닐지라도
우리말로 순화된 현장용어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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